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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3' 김영하 작가, 연산군 유배지 최후 가계도 "부인 장은수 집안 자녀" 가족사 



‘알쓸신잡3’가 재미있는 주제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tvN 방송 캡처

‘알쓸신잡3’가 화제 입니다.

7일 방송된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3’에서는 김진애, 김상욱, 유시민, 유희열, 김영하의 지식 여행이 펼쳐졌ㅅ브니다.

이날 유희열은 "'엔트로피 사랑'이 음원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2위에 올랐더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김상욱은 음원 댓글을 보니까 다들 '알쓸신잡 보고 오셨죠?', '10만 갑시다'고 적혀있더라 합니다.

뮤직비디오가 2년간 2만 뷰였는데 며칠 사이 4, 5천 뷰가 올랐다"며 자랑했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엔트로피 사랑'의 역주행에 대해 "역주행이 아니다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거든.정주행을 시작한 거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유희열 역시 "음원사이트 실시간검색어를 계속 보고 있었는데 광속으로 떨어지더라"고 했습니다.

또한 강화 여행을 위해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인 멤버들의 집합 장소는 바로 아침식사로 백반을 먹을 수 있는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식사로는 부대찌개가 준비돼 있었는데 신경을 쓴 것 같은 비주얼로 맛있는 음식 맛 덕택에 유시민 작가, 김진애 박사, 김영하 작가, 김영하 교수, 유희열이 먹방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유희열은 “눈을 뚫고 와서 다 같이 아침 먹으니끼 되게 좋다”며 행복해 했습니다.

이날 유희열은 "'알쓸신잡'에서 유배지를 은근히 많이 다녔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알쓸신잡'은 그간 시즌2에서 단종 유배지 강원도 영월, 윤선도 유배지 전라남도 완도, 정약용 유배지 전라남도 강진, 김정희 유배지 제주도 서귀포 등을 다녀왔고, 이번 시즌에 갈릴레오 유배지 이탈리아 피렌체를 다녀왔습니다.

이날의 유배지는 강화 교동도로, 유배지계의 핫플레이스였다. 유시민은 "무신 정권 때다. 무신들이 세도 정치를 해서 왕을 맘대로 할 때 입니다.

왕을 끌어내려서 유배 보낸 데가 교동도다. 왕족 유배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김영하 작가는 연산군을 ”조선시대 파티피플“이라 비유하며 눈길을 끌었다. 이어 유시민은 ”과거 학교 역할을 한 성균관에 나이트 클럽을 세웠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두 사람은 2005년 개봉한 영화 ‘왕의 남자’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유시민은 ”‘왕의 남자’가 연산군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팩션“이라 설명했다. 이어 흥청망청이라는 단어의 유래도 연산군의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유시민 작가는 "90년대 잘 나갔던 가수들은 유학을 가서 잘 몰랐다. 서태지와 아이들도 처음 나왔을 때는 몰랐다. 나중에 문화 대통령이라는 보도를 보고 테이프를 하나 샀다. 10분 들었는데 알겠더라. 음악을 잘 모르는데도 사운드가 다르더라. 내 차가 고물차라 다른 노래는 안 들리는데 서태지 테이프는 다 들리더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유희열은 "선생님이 제 전성기를 못 보셨다"고 안타까워하며 "한창 DJ 했을 때 대학생들 설문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1위가 저였고 2위가 대통령이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연산군 최후 


30살에 멀쩡하던 사람이 유배 2달만에 죽었는데, 정상적 죽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링크한 글의 평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정상적 죽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점은 같은 생각입니다.

흥청망청의 대명사 연산군...


중종에 의해 꽤나 손쉽게 반정이 성공한 사례로 강화도 교동도 유배행...


근데 유배간지 2달만에 죽은 건 처음 알았음.. 

출처 - 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1812080026030606&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sig=h6jRSY-YghRRKfX@hljXGg-YLmlq


연산군 가계도


김영하 작가 프로필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위키백과

출생: 1968년 11월 11일 (김영하 작가 나이 50세), 김영하 작가 고향 화천군

김영하 작가 키: 183cm

배우자: 김영하 작가 부인 장은수 (김영하 작가 결혼 1996년–)

두 살 연하로, 김영하와 마찬가지로 연세대학교 학사(심리학), 석사(문학) 출신이다.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같이 한국어 교사로 일하면서 만났다고. 현재는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듯 하다.

김영하 작가 학력: 연세대학교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오빠가 돌아왔다, 주홍글씨,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작가 자녀 없음

1968년 강원도 화천군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방을 옮겨 다니며 성장하다 1980년부터 서울에 정착하였다. 잠실의 신천중학교와 잠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방위병으로 헌병대 수사과에서 군역을 마쳤다.[1]

1968년 11월 11일, 강원도 화천군에서 군인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인 아버지는 베트남전쟁때 참전한 경력이 있으며 베트남 전쟁 파병 당시 그곳에서 서울 출신인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부모님 두분 모두 외아들, 외동딸이면서 부모(김영하에겐 조부모)를 일찍 여의고 외롭게 살아왔던 것 등이 공통점이 많아서 둘이 결혼했다고. 그래서인지 김영하에겐 가까운 친척이 없다.[2] 그 역시 어린 시절을 힘겹게 보냈는데, 10살 무렵 연탄 가스에 중독되어 그 이전의 기억이 모두 상실되었다고 한다.[3] 직업군인인 아버지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근무하였고 이사도 자주 갔었다고 한다. 내성적이고 수줍은 성격 탓에 학교에서 수업 발표도 제대로 못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 직후 서울로 상경한 이후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뀌었고, 학창시절에 주위의 친구들을 그럴 듯한 이야기로 속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이후 잠실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4] 


어머니가 가톨릭 신자여서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많이 다녔으며, 작가가 되기 전까지 꿈은 당시 종교가 가톨릭이라 가톨릭 사제가 될려고했다고 한다. 작가가 되고 나서는 어머니에게 성당좀 다니라는소리를 듣는 냉담자가 되었고 이후 아예 가톨릭과는 연을 끊게 되었다고 한다.


자전적 수필(말표 구두약)에서는 군 시절을 51사단 헌병대 수사과(방위병)에서 보냈다고 한다. 원래는 학군사관후보생이었으나 4학년 때 학군단을 그만두었으며, 대학원 졸업 후 군대에 다녀왔다고. 유럽의 미술과 문화, 원형 극장과 와인에 관심과 조예가 깊다. 유럽 기행 TV 프로그램도 제작했었고,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와 근사한 오디오, 중형 세단에 공무원 직함(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직)까지 버리고[5] 처음 간 곳도 시칠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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